현대영미희곡 수업에서 다루기로 한 작품인데, 오오 오랜만에 한 자리에서 읽어치울만큼 끌리는 책이다. 희곡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같은 작가의 '세일즈맨의 죽음'보다는 이게 개인적으로 더 좋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았을 때, 아서 밀러는 부정의 또는 부당함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물들을 많이 다루는 것 같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읽으면서 머리가 아팠다. 인물들의 개성도 워낙 뚜렷하고, 그 제각각의 개성들이 답답하리만큼 들어맞지 않았고 계속 어긋나는 그 모습에 현기증이 났다.
The Crucible (한국어 제목을 모르겠다)은 선악 구도가 있다고 전제되는 곳에서 시작하고, 대립각이 더 뚜렷하달까- 갈등의 원인도 처음부터 분명하고 긴장감도 높아서 머리가 덜 아팠다. 어떻게 보면 '세일즈맨의 죽음'이 더 섬세한 작품인 것이지만, The Crucible은 아서 밀러가 개인적으로 겪은 '매카시즘'의 아픈 기억을 바탕으로 그것을 강하게 비판하기 위해 창작되었기 때문에 그런 뚜렷한 입장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이 작품의 역사적 배경인 Salem Witch Trials (살렘 마녀재판)과 경험적(?) 배경인 McCarthyism(매카시즘)에 대해 발표자를 정하기로 되어 있어서 매카시즘을 맡았다. 조사를 하고 이런저런 자료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미국에 가끔씩 잦아드는 광풍(狂風)의 무서움이다. KKK도 그렇고, 미국의 민중들은 가끔 이웃들에게 무시무시한 일들을 집단적으로 자행한 적이 꽤 있다. 어느 나라건 그런 게 없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군부가 시민들을 학살한 적은 있어도 한 지역 내에서 이웃주민들끼리 서로를 죽이거나 교수형에 처하게끔 한 경우는 들어보질 못했다. 이런 것들이, 미국이란 나라에 체류할 수는 있어도 평생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촉매 역할을 한다. 반드시 그러리라는 법도 없고 기우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 나라에 가면 소수자 신분일 수밖에 없는 아시아 여자로서는 그런 현상들을 무관하다는 듯 웃어넘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어쨌든, 매카시즘은 1950년대에 대대적으로 유행한 현상으로, 공산당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흔적이 보이는 사람을 사직시키거나 재판에 회부하는 20세기형 마녀재판이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이 없는 것인지, 이런 일들은 항상 되풀이되는 모양인데, 아서 밀러도 지목되면서 갖가지 고초를 겪은 모양이다. 이런 일에는 꼭 편승하여 평소에 불만을 가졌던 타인을 밀어내려는 소인배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유명인사들도 많이 지목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 언론인인 Edward S. Murrow란 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에 대해 반박하며 매카시즘 현상을 비판한 영상 (정확히는 그를 기려 영화로 만든 그 영상)을 보고 나는 감동했다. 이렇게 고결하고 지적인 언론인이 그 시대에, 미국에 있었구나. 언론인의 품격을 높이는 사람이다. 이에 필적할 만한 현대의 언론인을 나는 잘 알지 못하는데, 나의 무지 탓인지 현실의 각박함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래는 그 동영상. 언어의 사용부터 품위가 있다.
아래는 Murrow씨의 연설로, 미국에서는 무척 유명한 듯 싶다. 언론의 기능이 변질되는 것에 대한 경각심과 사람들에게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는 내용의 연설로, 이것에도 감명받았다. 예리하고 지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이 느껴진다.
여담으로, Murrow씨는 "Good night, and good luck"이란 말을 끝에 쓰는 습관이 있었나본데, 최근 미국의 한 언론인이 이를 차용하여 "Good night, and good luck"이라고 하며 은퇴선언을 했는데, 막상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Murrow를 따라한다고 Murrow가 되는 건 아니라는 반응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독후감이 아니라 '인물'의 발견글이 되어버렸네. 하지만 The Crucible의 주제는 이 언론인의 연설과 맥을 같이 하니, 그렇게 무관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 by | 2008/03/29 23:50 | writing room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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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영화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얼떨껼에 아는 형과 뭔지도 모르고 봤는데, 매카시즘의 광풍에 맞선 멋진 언론인이라는 기억이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