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의 인연


신기한 일이었다. 싸이 쪽지로, 모르는 사람이, 마치 오랫동안 알아왔던 듯이 덤덤하게 "지큐가 괜찮지요."하고 문자를 보낸 것은. 낯선 사람이 쪽지 보내는 것은 경계하는 터이지만, 싸이를 랜덤으로 돌아다니는 가엾은 인간 취급하기 전에 그의 싸이에 무엇이 있는지 보아야겠다 싶었다. 텅 비어 있는 싸이라면 백이면 백, 뻔하다. 그런데 내 싸이 홈피는 사진조차 없고, 거의 열려 있지 않은데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_ 유인이 없는데_ 싶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사람은 내 또래고, 남자고, 형제 중 막내였으며, 정신이 예민하며, 감수성도 그만큼 민감하다. 사랑을 사랑하고, 그걸 표현하는데 스스럼이 없다고 해야 할까, 글에서 충동과 감성과 저릿함이 넘쳐 흘렀다. 글을 잘 쓰는 편이라고 해야겠다. 순간 야금야금 발라먹고 싶을 정도의 글을 참 오랫만에 만난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한동안 무엇인가가- 무엇이든-넘쳐흐르는 글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글들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서슴없이 사랑해, 그리고 사랑해의 수많은 변용 문장들을 구사할 줄 아는 보기 드문 남자였다. 그런 말들로 수많은 여자들에게 상처를 주신 듯했다.

실제로 만났다면 낯간지러웠을 것이며, 이런 사람은 기피했겠지. 그렇지만 온라인상으로 알게 된 인연은-물질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는 견고하고도 안전한 벽이 있기에- 오히려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남긴 몇몇 글들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어리고 감수성 있고 글을 잘 쓰는 데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또래 중에는 이런 글 쓰는 사람이 드물다. 순간 이 사람과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에 대한 반사적인 경계심처럼, 글을 잘 쓰는 남자 또한 한 발짝 물러서서 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잘생긴 남자보다 글 잘 쓰는 남자에 약하다.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글 잘 쓰는 남자들의 전형적인 흠도 안다- 그들은 변덕스럽고, 살짝 자아도취적이며, 여자보다는 자기 감정을 사랑하는 편이다. 나는 그들의 글을 사랑하지만, 인간으로서 그들과 부대낄 자신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의 글들에 자극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나 자신이 글을 쓸 때 그렇게 적나라하지 못함에. 부족한 것이 솔직함인가 자신감인가. 이런 글을 접한지 너무나 오래되었어. 죽어있던 세포들을 확인하는 기묘한 기분이 들면서, 약간 슬퍼지기도 했다. 나도 심장이 말랑말랑, 통통 튈 때 글을 많이 써놓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온라인상의 인연이란 낯설다. 그는 내 친구의 친구라고 했다- 재미있는 우연이고나. 그와 알게 되어 다른 얘기들을 해보면 좋겠지만 온라인상의 인간관계에는 그닥 기대감이 없는 편이다. 그는 매력적인 인간인 듯 싶지만, 그의 문장들에는, 아무래도 좀더 성숙해보이려는, 좀더 엄숙해보이려는 소년스러운 태도들이 묻어난다. 우리 나이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나는 여전히 냉소적이기 짝이 없구나. 인연이란 스쳐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냥 그러려니 싶지만,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에 약간의 재미를 주어서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과 나의 '공통 친구'란 대체 누구일까?

by Josée | 2008/07/03 02:41 | living room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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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조영환 at 2008/07/03 11:37
워 어떤 글인지 궁금하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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