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여인, 즉 영화 속의 여인이야말로 아름답고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조그만 입술을 가진 여인 역시 바로 우리가 그리는 완벽한 여자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 속의 여자는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립스틱을 칠한 예쁘고 작은 입술이, 립스틱이 지워지면 초라해지고 볼품없는 것이나 비슷한 현상이지요."
-마누엘 푸익, 작가 인터뷰 중-
[거미여인의 키스]를 좋아하는 걸 어찌 아시고는, 친한 언니가 마누엘 푸익의 다른 작품 [조그만 입술]을 선물해 주었다. 마누엘 푸익은 그리 다작을 한 소설가도 아닌 데다가, 번역이 잘 안 되어 있어 구하기가 어려운 작가다. 언니로부터 선물받기 전까지는 이런 소설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푸익 아저씨는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현실은 (우리의 헛된 환상과 상상, 희망 덕택에) 얼마나 입체적이고 다각적인가! 수많은 1인칭의 관점들을 한데 모은 것 같다.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조금씩 사용되던 기법들, 편지글을 바로 쓴다든지, 대화 속에 '방백(?)'을 삽입한다든지 등등...의 형식들을 이 소설에서는 보다 심층적으로 실험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약간의 혼란 속에서 헤매기도 했지만 (뭐야, 셀리나가 나쁜 X 아니었나? 뭐지?) 읽고 나면 얼마나 '현실'이란 것을 잘 표현했는지, 씁쓸할 정도다.
네네와 마벨은 소녀 시절 잘생긴 소년 후안 까를로스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그는 두 소녀를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했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무의식 근저에는 돈에 대한 욕망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식모 소녀인 히프는 판초를 순진하게도 좋아하고 판초는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면서도 네네의 하얀 다리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고, 네네는 히프에게 자기가 입던 옷을 주고,
엇갈리는 사랑의 크기와, 애써 숨기는 반감과, 환상에 종종 취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그런 소설. 시트콤에서나 나올 법한 평범한 현실을 그렸지만 그 평범해 보이는 현실 속에 잘도 숨어있는 위선, 욕망, 부글부글거리는 분노, 무관심과 권태를 잘 잡아내었다.
예쁜 소녀의 지저분한 과거와, 돈 많았던 집 숙녀의 지저분한 행실, 잘생긴 소년의 알맹이 없고 병약한 내면...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는 혹독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환상을 창조하여 거기에 의존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가느다랗게 조금씩 맞닿아가는 애틋한 감정의 선을 그려냈다면, 여기에서는 반대로 환상에 곧잘 취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해주는 듯한 적나라한 글쓰기를 선보이셨다, 푸익 아저씨께서는.
그러나 여전히 심리 묘사는 섬세하고, 주인공들의 개성은 분명하구나.
관심있으신 분들은 <책세상문고>에서 나온 [조그만 입술]을 찾으시면 됩니다.
남미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즐기며 읽으실 것이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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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7/31 22:41 | reading roo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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