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보는 책들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 외
김현, <폭력의 구조> <시칠리아의 암소>

진지한 리뷰 포스팅을 하고 싶으나 일상이 정신없다 보니 생각도 두서없어서 긴 글을 쓰지 못하겠다.

1. 정미경

정미경이란 사람은, 어느 한가한 금요일 오전 9:30경, 독서실 가는 길에 붙들려 들어간 느긋한 까페에서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알던 친구, 흑인음악을 광적으로 사랑하며 인생의 음반만 손꼽아 100장인 그 친구가 피어올리는 담배연기 속에서 그 이름을 들었다. 행시 준비를 괴로워하면서도 빡세게 하는 그 녀석은 학원 1교시를 머릿속에서 비우기로 마음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던 중 내 뒷모습을 보았다고 하며, 근래에 박상륭의 다른 책을 읽어보았냐고 물었다. 아니, 비슷한 다른 책을 읽고 실망하게 될까봐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어, 라고 말하며 레몬 아이스티를 한 모금.
이 아이는 박상륭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에서 첫 1년을 보냈지만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전혀 친하다고 할 수는 없는 그런 사이였다- 졸업할 때까지. 졸업한 후 몇 년 뒤에, 싸이단체쪽지로 추천도서를 구하는 그에게 그 당시 내가 읽고 있던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주저주저하며- 나는 당시 이 책에 열광하고 있었으나 내 주위에 나와 공감하는 이는 적었다- 추천했다. 그는 두 권이나 되냐며 투덜대며 샀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흐른 뒤 다른 대학 다른 친구 일일호프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나를 본 그 놈은 만사 제쳐놓고 와서 그 책 자기를 미치게 한다고, 고맙다고 계속 그래서 나와 내 친구를 당황하게 했다. 그 후로 우리는 뭔가 희한한 독서 친구 비슷한 것이 되었다. 그 이외에는 공통화제가 그닥 많지도 않았고.
어쨌든 나는 최근에 내가 읽은 책을 떠올려 봤지만 e.e.cummings의 <The enormous room> 정도밖에 추천할 책이 없었다. 구하기도 힘들고 그래서 그 얘기하긴 힘들겠구나. 그 때 그 친구가 정미경이란 작가를 아냐고, 그러면서 예의 그 활기와 열의가 띤 얼굴을 하는 것이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도 있고, 자기가 어느 평론을 읽어보았는데 그 때서야 이해가 갔고, '환(幻)'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줄 나중에야 알았고 등등등 등등등. 그래서 며칠 후 중앙도서관에 억지로 들러서 그가 말한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2006년을 빌렸다.
아직 정미경 작가의 글만 읽었다. <밤이여 나뉘어라>는 이상하게도 권지예의 <뱀장어 수프>를 자꾸 떠올리게 했다. 소설의 뒤에 그림이 어른거리는 것도 비슷하고 외국의 냄새, 외롭고 고립되어 있는 그 느낌이 물씬 나는  것도 비슷했다. 하지만 <뱀장어 수프>에는 붉은 빛, 노란 빛도 있고 밝은 빛깔들이 많이 얽혀 탐욕스런 느낌이라면, <밤이여 나뉘어라>는 남색으로 뒤덮여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천재 의사의 설정이 약간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쩌면 내가 진짜 천재들을 많이 못봐서 그런 것일 수도- 끝까지 긴장을 유지할 줄 아는 소설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미경 씨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뽑은 중편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생활의 자질구레함에서 오는 갖가지 갈등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혹하게 자존심과 감정을 강타당했을 때 느끼는 충격이 중첩적으로 잘 버무려져 있었다.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사람은 사랑만 먹고 살지는 않으니까. 소설들은 가끔 등장인물들이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나이를 먹을 수록, 그런 소설보다는 구차하지만 솔직한 묘사가 담긴 소설에 끌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나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었던 이가 실은 다른 사람을 죽도록 사랑했다면?"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이야기로 훌륭하게 엮어냈다. 끝부분에 '메롱'하는 느낌의 깔끔함도 사랑스러웠다.
정미경 씨를 추천한 그 녀석에게 빚을 진 느낌이다.

2. 김현, <폭력의 구조>, 지라르

김현 씨의 유려한 문체는 고등학교 때 몽상가스러운 문학 선생님의 소개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를 본격적으로 알아보고자 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양 교수님이 잠깐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지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며 (법리와 판례가 이렇게 기억나면 얼마나 좋을까 -_-) 김현의 책들을 찾아 읽어보겠다는 가상한(?) 결심을 했다. 그가 쓴 문학평론집을 한 권 읽고, 이 책이 두 번째로 집어든 책이다.
이 <폭력의 구조>는 김현의 지라르 (Rene Girard) 분석 비평이다. 르네 지라르는 '폭력'을 연구한 학자다. 호기심이 생겨 몇 번 찔러봤지만 결국 <희생양 (The Scapegoat)> 한 권을 겨우 읽었다. 그리고 감동했다. 그에 따르면, 신화와 옛 이야기들 속에는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희생양에게 가한 폭력이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나, 창조설화의 신들은 종종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표지를 갖춘 희생양이 폭력에 의해 희생된 후에 신성화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의 설화, 성서 속 일화 분석은 무시무시할 정도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냈다는 것이 그의 뛰어남이다. 어쨌든 김현 씨의 비평 <폭력의 구조>를 통해 지라르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키우는 느낌이었다. 다만 김현 문체의 수려함은 조금 덜했다.

by Josée | 2007/09/02 21:34 | reading roo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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